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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

 

 

 

 

미국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이판과 함께 미국령으로 미국비자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3시간 가량이면 도착하는 곳으로 1년 내내 온화한 기후와 깨끗한 바다로 우리나라에선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속한 지역은 마리아나 제도로 이 제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의 어원은 원주민인 언어인 차모로 말로 '우리는 갖고있다' 란 뜻의 'guahan'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의 해안은 모래사장, 절벽, 바위등의 다양한 모습이 연출되어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으며 여행객의 발길이 드문 섬 남부지역은 한가로운 남태평양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국가개요

면적 : 549 ㎢
길이는 48.39 km, 폭은 북쪽의 좁은 지역이 13.71 km, 남쪽의 가장 넓은 지역이 18.55 km으로 우리나라의 거제도와 비슷한 크기다.

수도 : 아가나

정치형태 : 미합중국 영토의 일부로 되어 있는 까닭에 주민은 미국 시민권과 자치권을 갖는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권을 행사 할 수 없음) 정부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사(임기 4년)가 통치를 하며,의회는 일원제이며 섬의 각지에서 선출된 21명의 의원에 의해 구성된다.

종교 : 17세기에 스페인의 예수회 선교사인 산 비토레스에 의해 카톨릭교가 전파 되어 주민의 약75%가 독실한 카톨릭을 믿고 있다. 각 성당은 마을의 수호 성인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기념 축제(피에스타)가 벌어지고 있다.

주요도시 : 아가나, 투몬

주요민족 : 주요 인종은 원주민인 차모로족이 대부분이나 그외 필리핀 등지 에서 온 동남아 인과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서 온 아시아계 주민들도 많다. 그외 마이크로네시안, 인도, 유럽인들도 살고 있다.

주요언어 : 미국령이므로 섬전체에서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차모로인들은 고유의 언어인 차모로어를 사용한다. 은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입국하는데 덕분에 관광지에서는 일본어가 쉽게 통용되기도 한다.

경제
경제에 효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관광 산업으로 현재 에는 일본, 대만, 한국 관광객 등 무사증 입국으로 에 찾는 여행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노동 인구의 약 50% 정도가 관광 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만큼 경제적 그리고 고용효과면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은 지하자원이 없는 대신 소량의 열대성 과일과 채소가 생산되고 있으며, 생필품이나 건축 자재, 자동차 등 모든 물건들을 외부에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기후
열대성 해양기후에 속하는 의 기후는 연중 온화한 편이다. 크게 1월에서 5월까지 7월 - 11월 사이의 우기로 구분할 수 있다. 우기에도 짧은 시간 소나기처럼 내리고 마는 스콜성 강우가 많다. 은 또한 태풍이 지나가는 경로에 있어 영향을 받는 일이 많다.
해변의 연평균 기온은 약 27.2도 1년 내내 수영등의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햇살이 강하므로 썬크림이나 모자와 같은 것을 준비하는 게 좋다. 밤에는 일교차가 있을 수 있고 실내에서는 냉방장치로 온도가 내려갈 수 있으므로 얇은 긴소매 옷이 필요할 수 도 있다.

사회문화
의 문화는 한마디로 복합적이라 할 수 있다. 애초의 주인인 원주민 문화와 열강의 침략시기에 겪은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 일본의 점령, 다시 미국으로 이어지는 다양하고 바쁜 역사가 그들의 생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한 현지어
안녕! Hafa Adai! (하파 데이!)
안녕 친구!(가까운사이) Hafa lai! (하파 라이!)
안녕하세요?(격식차릴 때) Hafa tatatmanu hao? (하파 타탓마누 하우?)
무슨 일이세요? Hafa? (하파)
이름이 무엇입니까? Hayi naan-mu? (하이 나안-무?)
어디에 있습니까? (미누 나이 가이기?)
아침인사 Buenas dihas (부에나스 디하스)
저녁인사 Buenas noches (부에나스 노체스)
매우 좋습니다 Gof maolek (고프 마올렉)
내일 뵙겠습니다,또 만나요 Esta agupa(에스타 아구파)
안녕 (헤어질 때) Adios (아디오스)
감사합니다 Si Yu'os Maase(시 쥬스 마아세)
부탁합니다 (풋 파봇)
어디에 사십니까? (아마누 나 수마사가 하우?)
여기에 있습니다 (에스타 귀)
어디로 가십니까? (파라 마누 하우?)
동,서,남,북 (카탄,루찬,하야,라구)
일,월,화,수,목,금,토 (다멩구,루니스,마티스,미엣콜리스,후에비스,비엣니스,사발루)
1~12월 (이네루,피브레루,맛수,아브릿,마유,훈주,훌주,아구스투,셉티엠브리,옥투브리,노비엠브리,다시엠브리)

관광제안
에서의 즐길거리는 무엇보다도 해양 스포츠를 꼽고있다. 잔잔한 해면과 해안에 위험한 해류가 흐르는 일이 없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느린 속도로 진행 되고 수심이 평탄해서 어린이들이나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도 카약이나, 제트 스키, 바나나 보트, 그리고 스노클링등을 즐길 수 있다.

에서 이동하기
은 미국령으로 웬만한 것들은 미국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대중교통이 불편한 의 교통사정이다. 개별적으로 여행 온 것이라면 렌트카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해가서 현지에서 차를 임대할 수 있으며 운전이 미숙하다면 추가요금을 내고 현지인 운전수도 고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쇼핑센터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쇼핑
작은 섬이지만 에서는 전세계 유명브랜드를 다 만나 볼 수 있다. 고급스런 쇼핑몰들이 투몬, 아가나, 타우닝 지역에 몰려 있으며 호텔도 쇼핑 아케이드를 별도로 갖고 있어 쇼핑하기는 편리하다. 또한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다녀간 덕에 한국어가 가능한 상점도 있다. 쇼핑센터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편리한 쇼핑을 도와주며 쇼핑이 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간단하게나마 알 수 있다.

▣ 수퍼마켓
할인매장 처럼 운영되는데 가격은 저렴한 편이고 우리나라 음식이나 재료드을 팔아 이용하기에 좋다. 주로 미국제품을 구비하고 있다.

▣ 벼룩시장
매주말 아침 일찍 열리는 벼룩시장은 에서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무언가를 팔고 사기 위해 몰려든 현지인들로 인해 거리에 인파와 차량이 가득하고 천막으로 만든 상가가 금방금방 만들어 진다. 진열되는 상품은 종류도 다양하고 새것, 헌것 가릴 것이 없다. 입던 옷, 신던 신발, 낡은 군복, 자동차 부품, 농산물, 생선, 악세사리등 서민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벼룩시장은 오전 9시면 대강 정리가 되기때문에 아침 일찍 가는것이 좋다.
벼룩시장은 3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주변에 쇼핑센터와 슈퍼마켓등의 현대적인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그 규모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실 관광지 같은 역할을 해 사소한 생활용품이나 기념품 정도를 구입하기에 좋다.

▣ 토산품
의 태양아래 자란 코코넛을 이용한 토산품이 많은 편이다. 이 기념품들을 보면 코코넛 하나로 만들수 있는 종류가 다양한 것에 새삼 놀란다. 비누, 오일, 시럽, 사탕류는 물론이고 원주민 여자 댄서가 입은 속옷까지 각양각색이다. 차로모 빌리지에서는 원주민들이 이러한 것들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역사



의 문화가 복합적인 것은 그들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태평양에서 한가롭게 살고 있던 이들에게 차례로 여러나라들이 들어와 차모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이들의 사회, 문화, 역사에 새로운 면을 장식하게 된다.

농경 위주의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이 서구에 알려진것은 1500년대 유럽의 탐험가, 상인등에 의해서다. 열강의 식민지 건설이 붐이 일던 시기, 스페인 세력이 점령하였고 그 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배해 잠시 미국이 점령하지만 2차대전 중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일본의 패망으로 다시 미국에 의한 정부가 세워지고, 1949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의 자치가 인정되는 미국영토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영토로 선언되었다. 자치단체와 정부가 세워지고 주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일반정보



공휴일/축제
1월 01일 설날
1월 21일 마틴루터킹 목사 생일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2월 18일 대통령의 날
3월 06일 발견의 날
3월 29일 성금요일
3월 31일 부활절
5월 12일 어머니의 날
5월 18일 국군의 날
5월 27일 메모리얼 데이
6월 14일 국기의 날
7월 04일 독립기념일
7월 21일 해방 기념일
9월 02일 노동절
10월 07일 콜럼버스 기념일
10월 31일 만성절
11월 2일 위령의 날
11월 11일 제향군인의 날
11월 28일 추수감사절
12월 08일 성모수태제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국제전화
011-82-지역번호(0 제외)-전화번호 순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국제 전화를 걸 수 있는 방법은 국내 통신 회사를 이용하면 된다. (전화비용은 한국시간에 맞춰 부과)

▣ 한국통신
1-888-655-5840 후에 한국인 교환원이 나온다. (국제전화 콜링 카드 문의 : 00794)

▣ 데이콤
1-888-907-8282 후에 0(안내 방송에 따라) 후에 한국인 교환원이 응대한다. (국제전화 콜링 카드 문의 : 082-100)

▣ 휴대폰 로밍 서비스
한국에서 사용하는 011/017 휴대폰, 휴대폰 번호를 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SK텔레콤의 자동로밍 서비스가 있다. 현재 출시되어 있는 대부분의 휴대폰으로 사용이 가능한 자동로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의 대부분 지역(Tumon,Tamuning,Sinajana,Hagatna,Cocos Island 등) 에서 매우 편리하게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 휴대폰의 간단한 메뉴 선택 변경으로 가능하며 출국하기전에 인천공항 3층에 있는 SK 공항로밍센터를 방문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기본료없이 사용한 통화료만 낸다.

유용한전화번호
응급환자 앰블란스 : 911
의료 : 649-8147(Micronesian Assit.)
범죄신고 : 911
경찰서 : 472-8911
종합병원 : 646-5801
소방서 : 477-2615
한국 영사관 : 전화 649-5232 팩스 649-1336
한인회 : 649-0070
전화번호 안내 : 411

의료시설
을 여행하는 여행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간단한 의약품은 백화점이나 수퍼마켓,그리고 호텔 숍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응급 사고는 911로 전화를 하면 앰블런스가 병원까지 수송해준다.

전압 및 주파수
120V, 60 사이클을 사용한다. (220 V 제품은 어댑터 필요)

치안
치안 문제는 안심해도 된다. 세계 어느 곳이든 어두운 밤에 인적 드문 곳을 여자 혼자 걸어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만 주의한다면 여자들끼리 여행을 가도 별 어려움이 없는 곳이다.

통화
은 미국령이므로 통용 화폐는 미국 달러이다.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 할때는 국제적인 관례에 따라 수수료가 붙는데 그날의 환율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국으로 전화
시내전화의 요금은 25¢로서 정액제이나, 주유소, 슈퍼 등에서 쉽게 시내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호텔에서의 시내 전화는 50센트, 1달러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국제전화를 할 경우에는 전화카드를 한국에서 준비하여 가져가면 더욱 효율적이다. 011+82(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전화번호


현지로 전화
001+1(국가번호)+지역번호+상대방전화번호 전지역이 671을 사용하고 있다.

역사교육

 

 

 

 

위로부터 빨강·노랑·초록의 3색기이며 중앙에 문장()이 있다. 빨강은 동물을, 노랑은 광물을, 초록은 식물의 각 자원을 표시한다. 방패 모양의 문장에는 콘도르·알파카·빵나무, 포토시의 구릉, 9개 지방을 나타내는 9개의 별, 태양 등이 있다. 1851년 10월 31일 제정하였고 1888년 7월 14일 인증하였다. 국내에서는 문장이 없는 기를 사용하기도 하나 공공 및 민간 단체에서는 주로 문장이 있는 것을 주로 사용한다
 

인구는 100만 899명(2000)이다. 티티카카호(湖) 동쪽 80km 지점에 있는 볼리비아의 사실상의 수도(헌법상의 수도는 수크레)이며, 최대의 도시이다. 1548년 알티플라노고원 약 3,600m의 고지에 건설된 도시로, 볼리비아의 정치·문화\·경제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티티카카호에서 흘러내리는 라파스강(江) 연변에 전개된 분지에 시가지가 발달되었으며, 높은 단구(段丘)의 위와 하류부의 낮은 곳에 원주민의 주택이 있고, 그 중간에 백인지구가 있다. 순수한 인디오가 주민의 반을 차지한다. 강의 북동안(北東岸) 무리요광장이 시의 중심이며, 부근에 대통령관저를 비롯하여 정부청사·국회의사당 등의 건물과 로마가톨릭대성당, 1830년 창립된 대학, 박물관·호텔\·극장 등이 있으며, 고원도시임에도 근대적인 고층건물을 볼 수 있다. 중심가에는 동양인의 점포가 있다.

광업·축산업\·농업 활동이 대부분이고, 특히 주석·금\·안티몬·납\·구리·텅스텐 등은 중요한 광물자원이다. 티티카카호 주변 일대는 감자의 산지이다. 직물·가구제조\·화학·금속\·식품가공 등의 산업이 성하다. 라파스의 중심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플라도는 아름다운 거리로 ‘7월 16일 거리’라고도 한다. 서쪽 끝에 있는 베네수엘라광장에는 볼리바르상(像)이 있고, 동쪽 끝의 로마광장에는 수크레상이 있다. 철도는 안데스를 넘어 칠레의 안토파가스다항(港)에 통하고, 팬아메리칸 고속도로 등의 도로가 집중되어 있다. 또 티티카카호의 항로로 페루의 푸노까지 갈 수 있다.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가서 산에 오르면 세계 최고의 스키장이 있다.

 

볼리비아역사

 

볼리비아티아우아나코의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안데스 최고의 문명의 꽃을 피웠다. 아이마라족()은 11세기경 케추아족의 지배하에 들어가 이 땅은 잉카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1535년 피사로에게 정복되어 에스파냐의 영토가 된 후 포토시 등 많은 광산도시가 번영하였다. 1825년 인접국인 페루와 함께 수크레가 이끄는 볼리바르군()에 의해 해방되어, 국명을 ‘해방자’의 이름을 따서 볼리비아 공화국이라 이름하였다.

독립 후 정권은 쿠리올료(식민지 태생의 에스파냐인)라는 소수 지배층의 손에 들어갔고, 원주민인 인디오는 비참한 생활을 면치 못하였다. 1879∼1883년 태평양전쟁볼리비아의 초석과 구아노(바닷새의 으로 비료 등에 이용)를 둘러싼 영·미 자본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말미암아 칠레와의 사이에 야기된 것인데, 볼리비아는 이 전쟁에 패함으로써 태평양에 면한 안토파가스타주()를 내주고 내륙국이 되어, 이 나라의 발전은 크게 지연되었다. 전후 광산주를 대표하는 보수당의 집권, 내전을 거쳐 19세기 말부터 대지주와 상인을 대변하는 자유당이 정권을 쥐었고 국내교통의 정비, 종교의 자유 등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정치적 안정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또 은 대신에 주석 개발이 왕성하였으나, 그 이익은 파티뇨·아라마요·호호실로의 3대 재벌에게 독점되었고, 재정은 외국자본에 의존하게 되었다.

1920년대의 미국자본 진출은 광산회사의 주식 취득과 남동부 유전지대 100만ha에 걸친 스탠더드오일권리 취득으로 영국 자본을 훨씬 능가하였다. 1932∼1935년 차코전쟁에서는 미국자본의 지원 아래 영국자본의 지원을 받은 파라과이와 싸웠으나, 이 전쟁에서도 패배함으로써 파라과이에게 넓은 영토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볼리비아의 영토는 독립 당시의 3/5으로 줄어들었다.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타격을 받은 이 나라의 경제는 패전으로 더욱 악화되었고, 좌우의 정치세력이 대두하여 정치는 불안정하였다. 이 가운데 결성된 정치조직의 하나인 민족혁명운동은 1943년 쿠데타에 의해서 대령 비야로엘에게 정권을 담당하게 하여, 예농제()를 폐지하고 석유사업의 국가독점확립 등을 실시하였으나, 1946년 비야로엘 정권은 쿠데타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1952년 혁명으로 1951년에 대통령에 선출되었던 파스 에스텐소로의 민족혁명운동정권이 발족하여, 주석광산의 국유화, 농지개혁 등 일련의 획기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급격한 개혁정치를 편 결과 심각한 인플레이션 등 경제위기가 1954∼1956년에는 절정에 이르렀다. 1956년 정권을 담당한 실레스 소아소는 미국의 원조에 의해서 이 위기를 타개하였고, 1960년 재선된 파스도 이 정책을 답습하였다. 1964년 5월 파스는 총사령관 바리엔토스를 부통령으로 하여 3선되었으나, 11월 바리엔토스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다음, 모든 좌익활동을 금지시켰다. 1969년 4월 바리엔토스가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부통령인 실레스 사리나스가 정권을 이어받았으나, 10월  오반도의 좌경 쿠데타로 쓰러지고, 오반도 정권은 다시 1970년 10월 장군 미란다가 이끄는 군부 우파의 쿠데타로 붕괴되었다. 그러나 곧 좌파의 토레스 장군이 이를 눌러 정권을 장악하고, 이에 반대하는 군부 우파는 1971년 8월 쿠데타로 토레스 정권을 몰아내고, 장군 우고 반세르(Hugo Banzer)를 중심으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다. 7년간의 군사정권 후 1978년 7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장군 파레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4개월 후 장군 파디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1979년 7월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과반수득표자가 없어 대통령 선출에는 실패하였고, 144석의 의회만을 구성하였다. 의회에서도 대통령 선출에 실패하자 임시대통령으로 상원의장 월터 게바라를 선출하고 1980년 5월에 있을 총선까지 정권을 맡겼으나, 11월 대령 나투시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의회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사임한 게바라 대신 리디아구에일라 여사를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군부에 나투시의 축출을 요구하였다. 이에 불복한 군부는 반란을 일으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정국은 혼미상태가 계속되었다. 1989년 8월 사모라가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93년 8월에는 야당인 민족혁명운동당(MNR)의 곤살로 산체스가 시민연합 볼리비아 자유운동과 제휴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97년 6월에는 민족행동당(ADN)의 우고 반세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2001년 병으로 사임하였고, 부통령이던 호르헤 키로가(Jorge Quiroga)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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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

 

 

 

 

인도양 중북부 몰디브제도(諸島)로 구성된 나라.
위치 : 서남 아시아 인도 서남방 인도양상
면적 : 298㎢
인구 : 28만 1000명(2002)
인구밀도 : 943명/㎢(2002)
수도 : 말레(Male)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디베히어
통화 : 루피(Rufiyaa)
환율 : 11.77루피 = 1달러(2002.9)
1인당 국민총생산 : 1,960달러(2000)



자세히

면적은 298㎢, 인구는 28만 1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943명/㎢(2002)이다. 몰디브의 정식명칭은 몰디브공화국(Republic of Maldives)이다. 수도는 말레이며, 디베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남서 약 650km에 있으며, 8°선해협(Eight Degree Channel)에서 동경 73°선을 따라 적도 남쪽까지 남북으로 약 760km, 동서 128km의 해역에 산재하는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1. 자연
몰디브는 인도령 래카다이브제도의 남쪽에 있는 도서군으로, 섬의 수는 2,000여 개에 이른다고 하나 산호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산호충의 번식 상태에 따라 항상 변동하므로 정확한 수는 정부에서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육지면적도 불분명하다. 제도는 켈라이·틸라둠마티·물라쿠·말로스마둘루·아두·말레 등 19개의 산호초·환초로 대별되며 2,000여 개의 섬들 중 220개 섬에 주민이 거주한다. 섬의 고도(高度)는 낮아 어느 곳이나 6m에 미치지 못한다. 기후는 고온다습한 열대성기후로 1년은 남서몬순계(5~10월)와 북동몬순계(11∼4월)로 나뉜다. 남서몬순계에는 강한 바람이 불고 강우량이 많으나, 북동몬순계에는 공기가 건조한 데다가 바람이 잔잔하여 비교적 견디기가 쉽다. 우계의 변절기에 해당하는 3∼5월은 1년을 통해서 가장 더운 시기이다. 연평균기온은 24∼30℃이고. 연평균강우량은 1869m㎜이다.


2. 주민
몰디브의 인종구성은 싱할라계(Sinhalese), 드라비드계(Dravidian), 아랍인(人), 아프리카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몰디브제도에는 북부에 인도(드라비다)계, 중부에 아랍계가 많으며 남부는 스리랑카계가 분포한다. 공용어인 몰다비안 드히베히(Maldivian Dhivehi)어는 인도-유럽 언어군에 속하며, 대부분의 정부 문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대부분이 수니파 이슬람교이다. 2000년 인구증가율은 3.06%, 출생률은 1,000명당 38.96명, 사망률은 8.32명, 영아사망률은 65.52명이다. 평균수명은 62.2세로 남자는 61.05세, 여자는 63.4세이다. 15세 이상 문맹률은 6.8%이다(1995). 의무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3. 역사
몰디브제도에는 BC 1세기경 스리랑카와 인도로부터 싱할리인(人)이 건너와서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북부는 인도(드라비다)계, 중부는 아랍계가 많으며 남부는 스리랑카계가 분포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불교를 신봉하였으나, 12세기 중엽부터 아랍인과의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아랍인에 의한 이슬람교 포교활동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전 주민이 이슬람교도가 되었다. 1887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고 스리랑카에 식민지로 편입되었으나, 1948년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과 아울러 영국 직할의 보호국이 되었다. 그후 일시적인 공화제를 거쳐 1965년 7월 영국과의 손을 끊고 완전 독립을 달성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에 가맹하고 1968년 11월 신헌법을 시행하여 공화국이 되었다. 1985년 7월에 영국연방에 정식 가맹하였다.


4. 정치
몰디브는 원래 이슬람교의 술탄에 의한 세습왕제였으나, 1965년 독립 후 1968년 11월 공화제 이행(移行)을 발표하고 이브라힘 나시르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2001년 현재의 대통령 마우문 압둘 가윰(Maumoon Abdul Gayoom)은 1978년 7월의 선거로 임기 5년의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1988년에 쿠데타 미수 사건이 있었으나 1998년 11월 선거에서 5선에 성공하였다. 의회는 일원제이며 임기 5년의 의원 5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각은 10명의 각료로 되어 있고, 정당은 없다. 이슬람 종교법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사법기관을 운용한다.

몰디브의 섬은 행정상 19개의 환초(環礁)로 구분되며, 각 환초에는 정부에서 임명한 환초장이 있다. 또 이 나라의 특징은 모든 구조가 섬 단위로 되어 있는 점으로 비행장 섬, 도시 섬, 병원 섬, 교도소 섬, 농장 섬 등 각 섬이 기능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수도가 있는 말레섬은 이 나라 유일의 도시 섬이다. 외교면에서는 비동맹중립을 기본방침으로 하고 있다. 병역은 지원제이며, 정규군이 약 1,500명 있다.


5. 경제
몰디브는 1970년대에는 경제성장률이 저조하였으나 1978~1982년 사이에는 평균 경제성장률 9.5%를 유지하였고 1985~1992년 사이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이 매년 8.5%씩 늘어나는 호조를 보였다. 국내총생산의 산업별 비율은 관광업 17%, 어업 12.5%, 나머지는 농업·가내수공업·농수산물 가공업 등의 순이다.

몰디브의 주산업은 관광업, 가다랭이잡이 중심의 어업과 코코야자·빵나무·과실 등의 재배이다. 산호초로 구성된 섬이므로 흙과 물이 적어 국민의 주식인 쌀과 야채 재배가 곤란하여 쌀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야채는 귀중품에 속한다. 따라서 몰디브 경제는 어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으나,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과 다양한 해양 생태계를 바탕으로 최근 관광개발이 순조롭게 추진되어 어업에 이은 외화 획득의 근원으로서 주목되고 있다. 관광객수도 꾸준히 증가하여 2000년에는 46만 명이 몰디브를 방문하였고, 1972년 최초의 휴양시설이 개설된 이래 2000년에는 총 86개소로 증가하였다.

무역은 미국, 스리랑카, 타이, 독일, 싱가포르를 주요 대상국으로 하고 수산물이 수출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 경제성장률은 8.5%이고 수출은 6400만 달러, 수입은 4억 21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생선, 의복류, 수입품은 소비재, 석유이다.


6. 사회
몰디브는 인종·언어면으로 보면 싱할리인(人)과 관계가 깊다. 그러나 전 주민이 이슬람교로 개종한 이래 이슬람문화권에 속하게 되었고, 현 정부도 이슬람문화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 문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은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공립교육기관은 3가지로, 《코란》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학교, 디베히어(語) 학교,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섬은 산호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옥의 벽이나 도로도 흰색이어서 적도의 강한 햇볕이 눈부실 정도이며 일견 평화로운 낙원을 이룬다. 그러나 영국 통치하에 놓였던 옛날에는 말라리아의 만연으로 인구의 반수를 잃은 일도 있었다. 독립 후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원조로 열대 전염병 구제정책이 철저히 취해져서 말라리아는 전멸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의료시설은 불충분하고 그밖에 통신·운수 등의 정비도 미비한 상태이다.


7. 문화
몰디브에서는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전통음악과 춤을 쉽게 구경할 수 없고, 대신 유럽 등 외국문화 영향을 받은 현대 디베히문화를 접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흔히 서구문명을 볼 수 있으나 라마단의 시작과 끝 무렵에는 몰디브인만의 독특한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큰 북'이라는 뜻의 보루베루(bodu beru)는 잘 알려진 전통음악과 춤이며, 그밖에 디베히 노래를 부르는 록밴드 등도 있다. 몰디브인의 주요 식량은 생선과 쌀로 육류와 닭고기는 아주 특별한 때에만 먹을 수 있다.


8. 대한관계
몰디브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한국과는 1967년 11월, 북한과는 1970년 6월에 수교하였으며, 1970년 이후 한국은 물자의 원조·기증을 계속하고 있다. 1993년 외무장관 자밀이 비공식 방한하였다. 양국간에는 문화협정(1984), 경제·기술협력협정(1984), 항공협정(1990)이 체결되었다. 1999년 현재 대(對) 한국 수입은 101만 7000달러이다. 주요 수입품은 섬유류, 기계류, 전기기기, 플라스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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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

 

 

아프리카는 7세기에 이슬람화되는데 그곳에는 옛부터 베르베르라는 샘계통에 속하는 기마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이들의 영토는 이슬람제국의 영토가 되는데 이들이 독립하게 되는 것은 압바스제국 중기부터입니다..

맨 처음 알제리에서 이븐 루스탐에 의해 루스탐왕조가 세워지게 되는데 이 나라 이후에는 모로코에는 시아파의 이드리스1세가 세운 이드리스왕조가 튀니지에는 압바스 총독 아글라브1세가 자립한 아글라브왕조가 건국됩니다..

이때 이집트에서도 투르크 총독 아흐마드 빈 톨룬이 독립하여 869년 톨룬왕조가 건국됩니다..

톨룬왕조는 시리아를 정복하고 압바스제국에데 대항하였으나 톨룬이 사망하고 어린 나이에 즉위한 쿠마라 와이흐가 시리아에서 급사한 후 압바스군에게 896년 망하고 이 당시 아글라브왕조는 강력한 해군을 바탕으로 말타와 시칠리아 섬을 정복하고 이슬람의 영토로 만들었습니다..

시칠리아에 아랍인 혈통이 있는 이유가 아글라브왕조의 진출로 인하는 것이며 아글라브의 해군은 비잔틴의 해군도 격파하여 경제적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909년 튀니지로 이주한 시아파의 우두머리인 파티마 가의 우베이둘라 알 마흐디가 반란을 일으켜 아글라브왕조를 무너뜨리고 파티마왕조를 세웠습니다..

파티마왕조는 4대 칼리파인 알 무이즈의 치세때 전성기를 맞어 루스탐왕조와 이드리스왕조를 무찔려 북아프리카를 통일하게 됩니다..

이때 이집트에서도 투르크 총독 모하메드 이븐 투그즈에 의해 이크시드왕조가 건국되었는데 알 무이즈는 시칠리아 출신의 장군 자우하르에게 10만 대군을 주어 이크시드왕조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때 이집트에서는 카이로가 건설되었고 파티마왕조는 972년 이집트의 카이로로 수도를 천도하였습니다..

그후 파티마왕조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과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정복하여 압바스왕조를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괴상한 칼리파들이 등장하면서 쇠약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북아프리카에서는 바누 자이리에 의해 자이리왕조가 972년 건국되었고 알제리 총독이 자이리에게 독립하여 바누 함마드에 의해 함마드왕조가 1012년 건국되었습니다..

이때 모로코에서는 세네갈강의 베르베르족 전사집단의 우두머리에 의해 무라비트왕조가 건국되었는데 이 왕조는 북아프리카 역사상 무와히드왕조와 더불어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무라비트왕조는 1046년 건국되었고 3대 벤 요슈프의 치세때 전성기를 맞아 스페인으로 쳐들어가 당시 분열된 이슬람 군소왕국들을 통합하고 잘라카전투에서 스페인 왕 알폰소 6세를 격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안달루시아 지방은 모두 무라비트왕조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라비트왕조는 모로코에서 일어난 이븐 투마레트의 제자였던 압둘 무민이 이끈 무와히드군에게 대패하고 카탈로니아 용병들도 전사함으로써 마라케시가 함락되어 망하게 됩니다..

무와히드왕조는 북아프리카 역사상 제일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로 남으로는 세네갈강에서 서로는 모로코 북으로는 세비야 동으로는 리비아까지 영토를 넒혔습니다..


당시 자이리왕조는 시칠리아군에게 패하여 멸망하였고 함마드왕조는 1152년 무와히드군에게 멸하고 무와히드군은 동진하여 시칠리아군을 격파하고 리비아의 트리폴리까지 모두 수복하였습니다..

무와히드군은 계속 북상하여 모든 스페인의 군소왕국을 통합하고 1196년 알랄코스전투에서 알폰소 8세가 이끈 기독교 연합군을 격파하였습니다..

그러나 1212년 라스나데바로사 톨로사전투에서 한 양치기가 스페인군에게 이슬람군의 진지를 고하는 발함에 패배하여 이때부터 스페인에게 패하다가 1269년 모로코에서 일어난 메린왕조에게 마지막 칼리파인 이드리스2세가 살해당함으로써 망하게 됩니다..

1196년 모로코에서는 메린왕조라는 독립왕조가 건국되고 1236년 튀니지에서는 아부 자카리야에 의해 하프스왕조가 건국됩니다..

알제리에서도 자이얀왕조가 건국되는데 이중에서 모로코의 메린왕조가 가장 강력하여 알제리로 침략하고 튀니지와는 동맹을 맺었습니다..

메린왕조는 1340년 리오 살라도강전투에서 스페인,포르투갈군에게 패배하여 스페인 지배는 실패하지만 검은 술탄이라는 별명의 하산의 치세때 부흥하여 북아프리카 최강국이 됩니다..

이븐 바투타도 이 당시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이집트는 파티마왕조가 1171년 무너지고 대영웅 살라딘에 의해 아이유브왕조가 건국되어 순니파로 돌아왔습니다..

살라딘에 대해서는 너무 기니 그가 야만족 십자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수복한 영웅으로 아십시오..

아이유브왕조는 그후에도 계속 십자군과 싸웠고 1250년 마멜루크 정예병들의 반란으로 무너집니다..

마멜루크는 바흐리왕조와 부르지왕조 두 왕조로 나누어지는데 코카서스 출신의 투르크계 노예출신의 정예병들로 기마술과 병장기와 활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으로 이들은 유럽 십자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1260년 쿠토즈와 맹장 바이발스에 의해 아인잘루트에서 몽골군을 격파하였고 그후에도 바이발스가 술탄으로 있었을때는 세 차례나 침공한 몽골군을 격파하고 일칸국을 오히려 위협합니다.. 게다가 십자군들의 난공불락 요새인 크락 드 슈발리에를 함락시켰구요..

그리고 10대 술탄 나세르 모하메드는 1291년 십자군을 완전히 일소하고 가잔칸의 침입을 두 차례 격퇴합니다..

그의 치세때는 마멜루크는 말리제국과 메린왕조와 일칸국과 오스만제국과 더불어 중동의 최강국이었습니다..

그후 마멜루크는 1382년 부르지왕조가 일어나 1390년 바흐리왕조를 타도하고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쇠약해지기 시작하여 티무르에게 시리아에서 패하고 캬이트 베이의 치세때 잠시 강해지다가 1486년 포르투갈에게 해전에서 패한 후 1517년 오스만제국의 셀림1세에게 투만베이라는 용맹한 술탄이 포로가 되고 패함으로써 무너지게 됩니다..

오스만제국은 강력한 정예병 예니체리들과 시파히와 거포를 동원해 슐레이만1세의 치세때는 마멜루크의 반란자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오스만 치하에서 이집트는 속령이 됩니다..

이때도 마멜루크들은 살아남아 고위 관리가 되기도 하고 정치,군사도 담당하였습니다..

오스만제국은 16세기 중반에 북아프리카로 원정하여 1550년 알제리 출신의 해적이었던 하이레딘이 오스만제국의 제독이 되어 알제리를 습격함으로써 자이얀왕조가 오스만에게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1574년에는 튀니지의 하프스왕조도 오스만제국의 셀림2세의 군대에게 무너지게 됩니다..

다만 모로코만 살아남아 오스만제국에게 저항하였고 모로코는 1496년 메린왕조가 무너진 후 와타스왕조가 건국되어 침공한 스페인과 오스만제국과 싸웠습니다..

이때 수단에는 1504년 푼즈왕조가 건국되었는데 푼즈왕조는 기독교를 숭상하는 흑인왕국들을 모두 평정하고 바디2세때 전성기를 맞아 1696년과 1707년 두 차례나 에티오피아군을 물리쳤습니다..

한편 모로코는 와타스왕조가 1549년도에 무너지고 뒤를 이어 싸드왕조가 건국되었는데 싸드왕조는 침공한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을 삼왕전투라는 유명한 세명의 군주가 싸운 전투에서 대승하고 남하하여 서아프리카의 강국이었던 송하이제국을 1591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이 왕조도 내분으로 약해져 1631년 무레이라는 자가 알라위 피랄왕조를 세우고 1658년 싸드왕조를 무너뜨림으로써 이 왕조가 현재의 모로코의 왕조입니다..

이때 알제리에서도 오스만에게 독립한 토호의 왕조가 성립되었고 튀니지에도 17세기에 후사인왕조가 토호들을 성립하여 일어나 오스만과 분열되었습니다..

알제리의 토호국가는 1830년 프랑스에게 정복당했고 튀니지의 토호국가도 프랑스에게 정복당해있다가 1956년 독립하였으나 1년뒤인 1957년 무너졌습니다..

수단의 푼즈왕조는 1821년 오스만 치하의 이집트에게 정복당해 그 후 이집트와 함께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이때 모하메드 알리라는 유능한 총독이 오스만에게 독립하여 독립왕조를 열었는데 잉글랜드 지배하에 있다가 1952년 왕실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되었씁니다..

모로코만 유일하게 왕실이 존재하여 프랑스 치하에도 독립에 성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고 이중에서 리비아는 1956년에 사누시라는 투르크 토호가 왕조를 열었으나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라는 장군이 반란을 일으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수단은 잉글랜드 치하중 마푸드라는 신비주의 사상가가 반영주의를 일으켜 마푸디야왕국을 세우고 잉글랜드군을 무찌르고 잉글랜드의 장군의 목을 베는 전공을 세웠으나 결국 기관총을 앞세운 비겁한 잉글랜드군에게 패하여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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