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정리

 

 

 

서인도제도에서 2번째로 큰 히스파니올라섬의 동반부를 차지하는 나라.

위치 : 아메리카 카리브해
면적 : 4만 8671㎢
인구 : 883만 3000명(2002)
인구밀도 : 181.5명/㎢(2002)
수도 : 산토 도밍고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에스파냐어
통화 : 도미니카 페소(RD$)
환율 : 17.10RD$ = 1달러(2002.9)
1인당 국민총생산 : 2,130달러(2000)


면적은 4만 8671㎢, 인구는 883만 3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181.5명/㎢(2002)이다. 정식명칭은 도미니카공화국(Repblica Dominicana)이다. 카리브해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산토 도밍고이고, 언어는 에스파냐어를 사용한다. 서부의 아이티와는 같은 섬을 이분하고 있으나, 면적은 아이티의 약 4배이다. 콜럼버스가 제1차 항해 때 발견한 이래 정복·점령·독재·내란 등 고난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1. 자연

도미니카는 아이티와의 국경 북쪽에서부터 남안 중앙부에 걸쳐서 중앙산맥(최고봉은 3,175m의 두아르테산)이 뻗어 있어 국토를 북동부와 남서부로, 2대 1의 비율로 이분하고 있다. 중앙산맥의 북쪽 북부산맥과의 사이에 전개된 베이가레이알계곡(시바오 지방)은 옥토를 이루고 있어, 주요도시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길이 400km의 북(北)야퀘강은 북서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유입되고, 오사마강(江)은 남쪽으로 흘러 산토도밍고에서 카리브해(海)로 유입된다. 남서부에는 남(南)야퀘강과 해면보다 낮은 엔리키요호(湖)가 있으나, 해안을 따라 뻗은 남부산맥으로 남쪽이 막혀서 산지성(山地性)을 이루고 있다.

기후는 열대권에 속하여, 저지에서는 연중 30℃ 내외의 기온을 이루나 카리브해로 불어오는 북동무역풍의 영향으로 견디기가 쉽고 고지에서는 연평균 10℃ 내외를 이루고 있다. 연강우량은 북부가 2,000mm 이하, 남부가 1,500mm 이하이다. 영구경지 9%, 경작 가능한 땅 21%, 초원43% , 산림 12%로 이루어져 있다. 가끔 열대성 폭풍과 허리케인이 발생하여 큰 재해를 일으키곤 한다.

2. 주민

도미니카의 2000년 인구증가율은 1.64%, 출생률은 1,000명당 25.15명, 사망률은 4.72명, 영아사망률은 35.93명이다. 평균수명은 73.2세로 남자는 71.12세, 여자는 75.38세이다. 인구의 34%가 15세 이하로 유소년층(幼少年層)이 많다. 인종구성은 백인과 흑인과의 혼혈인 물라토가 73%, 백인이 16%, 흑인이 11%이다. 공용어는 에스파냐어(語)이다. 종교는 가톨릭이 94%, 신교 3% 그리고 나머지는 여러 종교를 믿고 있다.



3. 역사

도미니카는 1492년에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어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 16세기 중에 원주민은 전멸하였고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대량으로 수입되어 사탕수수 재배에 혹사되었다. 1795년 바젤조약에 의하여 프랑스에 이양된 이래 아이티군(軍)에 의한 점령·독립, 에스파냐통치, 재독립, 아이티에 의한 재점령 등으로 고난의 역사를 거쳤으나 1844년 드와르테의 지도하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현재의 국가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그후에도 군벌과 결탁한 토지귀족의 배신행위 때문에 1862∼1865년의 에스파냐 지배를 비롯하여 반란·독재의 반복으로 정치정세는 문란해지고 결국 19세기 말 이후에는 미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미국은 1917∼1924년 ‘권익의 보호와 질서유지를 위하여’ 해군을 파견하여 1941년까지 세관을 관리하였다.

미국의 동의를 얻어 1930년에 정권을 장악한 라파엘 트루히요는 족벌정치로 민심을 상실하여 1961년에 암살되고, 1963년의 총선거로 발족했던 도미니카 혁명당의 보슈 정권도 7개월간의 집권으로 종말을 고했다. 1965년 4월 대령 카마뇨 등 청년장교들이 보슈의 복귀를 요구하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실패로 끝나고, 1966년 6월의 선거에서 호아킨 발라게르가 보슈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3기에 걸친 대통령 임기 중 정계부패와 인플레의 증대로 1978년 5월의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야당인 혁명당의 안토니오 구스만 페르난데스에게 패하였고, 8월에는 구스만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하였다.

1982년의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도미니카 혁명당의 살바도르 호르헤 블랑코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1986년의 선거에서 호아킨 발라게르가 재선되었다. 이후 기독교 사회개혁당과 도미니카 혁명당 2개당이 번갈아 정권을 장악하는 양당정치의 형태를 띠어왔다. 그러나 1996년 5월 선거에서 전 대통령이자 도미니카 해방당에 속한 페르난데스가 승리함으로써 다당정치가 시작되었다.

4. 정치
도미니카는 1966년 11월에 제정된 현행헌법에 의하면, 원수는 국민투표에 의하여 선출되는 대통령으로 임기는 4년이다. 국회는 양원제이며 상원은 26주와 수도권에서 한 사람씩 선출되는 의원을 합쳐 4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하원은 인구 5만 명에 한 사람의 비율로 뽑히는 의원 149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역시 4년이다. 2000년 5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도미니카 혁명당의 히폴리토 메자(Hipolito Mejia)가 승리하여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주요정당은 도미니카 혁명당(PRD)과 개혁당(PR)이 있다.

도미니카 혁명당은 안토니오 구스만 페르난데스가 1939년에 망명처에서 결성한 것으로서 소자본가·일부의 농민·지식인을 모아 결성한 정당이며, 반제국주의·반과두제(反寡頭制)의 입장을 취했으나, 기반이 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개혁당은 트루히요 사후의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1964년에 결성된 보수정당이다. 그밖에 예전의 혁명당 당수 보슈가 1973년 말에 만든 도미니카 해방당, 1970년에 개혁당에서 이탈한 극우분자를 규합하는 민중통합운동 등의 소회파(小會派)가 있다. 도미니카 공산당은 1944년에 창립되어 도미니카 혁명민주당(1946년까지), 도미니카 인민사회당(1965년까지)의 명칭으로 거의 비합법상태로 활동해왔으나, 구스만 정권 성립 후 합법화되었다.

외교적으로는 대미(對美) 협력과 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미주기구)를 존중하고 있고, NAFTA(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북미자유무역협정) 및 기타 지역의 경제 통합 움직임과 관련 중남미와 카리브해(海) 연안 국가들의 지역통합을 위한 교량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공산권과는 국교(國交)가 없다. 군사력은 총 2만 3400명으로 육군(1만 3000명)·공군(4,800명)·해군(5,600명)으로 이루어지고 수도경찰대 1만 2000명이 있으며, 군복무는 지원병제이다.

5. 경제

도미니카는 외국자본, 특히 미국자본과 대지주세력의 지배하에서 농업을 주요산업으로 하며, 사탕수수를 비롯한 소수의 산물에 의존하는 모노컬처(단일재배)를 특징으로 한다.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농업생산은 국민총생산(GNP)의 1/5 정도를 차지하나, 대토지소유제에서 사탕수수·담배·카카오·커피·바나나 등 수출작물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쌀·옥수수 등 국내소비용 작물도 재배하나 부족분의 식료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제조업은 자유무역지대 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2000년 말 현재 46개공단에 481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으며, 약 19만 7000명의 현지인력이 고용되어 있다. 공업의 대부분은 제당업이 차지하고 있고 그밖에도 면직공업·시멘트 공업 등의 경공업이 있으나 미미하다. 제조업에서는, 기업수로는 국유(옛 트루히요家 소유)가 60%, 외국자본소유가 28%, 민족자본소유가 12%이나 자본총액의 약 반은 미국민간 직접투자에 의하고 있다.

광업도 미국자본의 원조에 의해서 수출용으로 생산되는 보크사이트를 주로 산출하고 있으며, 그 밖에 금과 구리의 자원을 비롯하여 철·은·납·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수출은 원료수출·제품수입의 후진적 무역구조를 이룬다. 최대의 주된 무역상대국은 미국으로 수출의 80%, 수입의 45% 정도를 차지한다. 무역수지의 적자, 더욱이 운임·차입금의 상환 등에 의한 적자와 경상수지(經常收支)의 적자 등은 차관(40%) 및 미국의 증여(60%)에 의하여 보충되고 있다. 주요 교통수단은 자동차이며, 자동차도로는 총연장 1만 7645km이고, 철도 총연장은 1,770km이며 대부분이 제당소 전용이다. 도미니카는 카리브지역 최고의 통신선진국으로 전화사정은 양호하다.

2000년 경제성장률은 7.8%이고 실업률은 13.9%이다. 수출은 57억 달러, 수입은 94억 달러이고 주요 수출품은 니켈, 설탕, 담배, 커피, 카카오, 수입품은 연료이다. 주요 수출국은 미국, 독일, 네덜란드, 한국, 영국, 수입국은 미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일본, 에스파냐 등이다.

6. 사회
국민들은 도미니카가 콜럼버스가 미주대륙을 발견한 이래 최초로 식민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중남미의 원조라고 생각하여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도미니카는 초등 의무교육 6년간은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교육수준이 낮아 문맹률은 15세 이상에서 17.9%이다. 신문은 최대일간지 《리스틴 디아리오 Listin Diario》를 포함해 7종 이상이 있다. 라디오방송은 HJLB를 포함해 전국에 250개국 이상이 있으며, TV방송은 국영 TV와 미국 케이블 TV를 포함해 7개국이 있다.

1980년대 후반의 도미니카 사회는 도미니카의 스페인-카리브해의 혈통을 반영한다. 도미니카 사회는 인종과 계급으로 명백하게 나누어져 있으며 소수가 사회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 서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중산층은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일반적으로 도미니카 사회는 신분 상승의 길이 상대적으로 막혀 있는 편이며, 많은 수의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하거나 강화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소수의 백인과 대다수의 물라토, 흑인 간에 이질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7. 문화
도미니카의 인디오 영웅을 묘사한 《엔리키요》의 자 가르방, 문예평론가 페드로 엔리케스 등 저명한 문학가가 있다.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메렝게라고 하는 색다른 무곡(舞曲)도 있으나 ‘미국식 생활양식’이 일반생활에 침투되어 가고 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최초로 식민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당시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산토도밍고는 신대륙 최초의 도시이며 당시 신대륙 개척자들의 활동 본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