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정리

 

 

 

 

 

1.카르타고
기원전 2000년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현재의 레바논의 북쪽과 남쪽에 걸쳐 있는 좁고 긴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뱃사람들이던 그들은 금과 은과 철과 주석과 납을 찾아 서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물품들을 얻기 위해, 그들은 목재(그 유명한 레바논의 실삼나무와 같은 목재)와 보라색으로 염색한 천과 향수와 포도주와 향신료와 기타 생산품들을 거래하였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아프리카의 해안과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와 스페인 남부에 정착지들을 세웠습니다. 정착지가 설립된 스페인 남부 지역은 아마도 페니키아가 철생산지로 말하는 "다시스"라는 의견이 짓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카르타고는 숙적인 로마보다 약 60년 앞선 기원전 814년에 세웠다고 말합니다. 북아프리카 고대사 전문가인 세르주 랑셀은

"기원전 9세기 말엽에 있었던 카르타고의 탄생은 수백 년 동안 서부 지중해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문화적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역사가인 프랑수아 데크레가 “바다에 던져진 거대한 닻”이라고 묘사한 모습을 띤 반도에서, 카르타고는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 조상들이 다져 놓은 기초 위에, 주로 금속의 수입을 바탕으로 하는 상업망을 발전시켜 배타적인 거대한 거래 조직을 구축하였으며, 강력한 선단과 용병을 통해 거래를 독점하였습니다.

카르타고 사람들은 그러한 업적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이 없는지 계속 살폈습니다. 기원전 480년경에, 항해가인 히밀코는 주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영국의 콘월에 도착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로부터 약 30년 후에, 카르타고에서 손꼽히는 가문 출신인 한노는 3만 명의 남녀가 타고 있는 60척의 배로 이루어진 탐험대를 이끌고, 새로운 식민지를 세우기 위해 출항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한노는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아프리카의 기니와 심지어는 카메룬의 연안에까지 세력을 미쳤습니다.

그러한 모험심과 뛰어난 사업 수완 덕분에, 카르타고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카르타고」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기원전] 3세기가 시작되면서, 카르타고는 전문적인 노하우와 선단과 상업 제도로 인해 ···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리스의 역사가인 아피오스는 카르타고 사람들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은 권력 면에서는 그리스인들에 버금갔으며, 부의 축적 면에서는 페르시아인들에 버금갔다."라고 알려주는데 고대 북아프리카의 3대제국의 하나로써 군림하게 되죠..

2.리비아
고대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서 이집트 서쪽에 있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그 주민들은 히브리어 루빔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요세푸스의 저술물들(「유대 고대사」 Jewish Antiquities, I, 130-132 [vi, 2])에 나오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견해는 리비아 사람들이 함의 자손으로서 풋 계통인 사람들이었다고 알려줍니다.

"리비아 왕조"의 태조로 여겨지는 이집트왕 "세숑크 1세"는 르호보암 왕 제5년(기원전 993년)에 유다를 침략했을 때 많은 도시들을 함락시키는데 일조하였으며, 그들의 병력은 전차 수천대와 기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로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세숑크 1세의 원정과 30년후(기원전 967년)의 에티오피아의 유대원정군에도 참전한 기록을 볼수있는데,

기원전 7세기경에는 이미 이집트에서 에티오피아의 속국으로 넘어갔으며 이후 앗시리아의 군대에 패배를 당하는 수모도 당합니다. 특히 이집트의 도시 노-아몬이 아시리아군대의 손에 의해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구출하기 위해 리비아를 주축으로 힘을 썻지만 구제의 길은 열리지않게되죠.. 그후부터는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에 편승되어 살아가게됩니다.

3.에티오피아
아프리카의 3대 제국중에 하나로써 역사는 이스라엘의 솔로몬시대로 추정하는경우도 있고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가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카데시족"일것이라는 이야기등등해서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금 이야기한 3가지가 가장 근접한 제국의 시초로 보고있습니다.

시조는 메넬리크로써 전설에서는 솔로몬을 찾아간 스바의 여왕과의 관계속에서 나온 아이가 메넬리크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에티오피아의 역사에서도 그점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 않더군요...

제국이 시작되고 기원전 10세기까지 적어도 15세기가량 이집트의 속국으로 있었을것으로 추정되지만 10세기 이후부터는 왕권이 일반 남성위주로부터 여성위주의 국왕제가 바뀐다는 점부터 시작하여 제국이 이집트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보여집니다.

이후 기원전 8세기 강한 군사력을 필두로 이집트를 정복하고 60년이상을 속국으로 삼고 북아프리카 일대를 주름잡습니다. 당시 이 제국을 이길 국가가 없었다고 요세푸스는 말하고있습니다.

이 60년의 시간이후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이집트는 물론 북아프리카 일대가 앗시리아 속국이 될때까지 서남아시아및 북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했던 대 제국으로 남고있습니다.

4.이집트
아프리카의 3대제국의 마지막국가이며 우리들에게는 파라오, 스핑크스, 피라밋등으로 알려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흔히 말해 나일문명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나일강은 이집트를 풍요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아프리카하면 생각하기를 못살고 못먹고 못입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집트는 그런것과는 무관합니다. 대체로 이야기되는 이집트의 역사의 시작은 기원전 40세기경이며...아직가지 이집트 신관 '마네토'의 기록물에 의존할수밖에 없는 역사를 지니고있습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여러민족이 혼합한 민족일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그들의 그것은 이 나라가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구역(후에 노모스라고 불리게 됨)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점을 들수있겠습니다.

그러한 구역 분할은 이 나라가 한 명의 주된 통치자 아래 연합된 후에도, 사실상 이 제국이 끝날 때까지도 존속하여 정부 구조의 일부를 형성, 하이집트에 20개, 상이집트에 22개, 도합 42개의 노모스가 있었던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4대문명의 발상지중에 하나이면서도 메소포타미아문명보다 발전했을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국은 3대제국중에 한 제국인 에티오피아에게 넘어간후 자치적은 국가로써의 명맥은 사라집니다....